호남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5-1

운당 2012. 10. 27. 10:05

 

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5-1

<지리산 천왕봉>

 

산들은 높이 솟아 구름 위에 떠있고(萬丈 雲峰),

병풍같이 두른 층층(層層) 산은 겹겹(益山)이 쌓여 있네.

 

만장 운봉이 높이 솟아, 층층한 익산이요.”

여기서 높이 솟아를 부를 때는 한껏 목청을 높여 불러야 한다. 하지만 높은 소리가 안 나와도 기죽을 필요 없다. 손에 든 부채를 높이 쳐들면 그게 높은 소리를 대신 한다니까 말이다.

, 이제 만장 운봉 고을에 들린다.

 

지리산! 민족의 영산이다. 태고 적부터 인간을 품어 살려온 산이다. 나라를 잃은 사람도, 탐관오리에게 쫒기는 사람도, 남이냐 북이냐 갈등하는 사람도 아무 말 묻지 않고 거두어 준 산이다.

만 길이나 되는 높은 산, 구름을 옷으로 걸친 산이다. 그래서 째째한 무리들까지도 조건 없이 이유 불문코 받아주고 거두어 주는 것이다.

 

<천렵>

이제 쌀쌀한 날씨에 물천어가 맛있을 때다. 냄비에 고구마 순을 넉넉히 깐 다음 내에서 갓 건져 올린 붕어며 피리, 미꾸라지를 먹을 수 있게 손을 본다. 호박, 고추 숭숭 썰어 넣고, 마늘, 된장으로 양념하여 끓이거나 지진다. 먹거리가 부족할 때 그 물천어는 맛과 영양, 요기까지 되었다. 덤으로 천렵은 그렇게 우리 촌놈들이 한 나절 모여서 나누고 즐기는 미풍이기도 했다. 물론 물천어의 거룩한 희생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금강의 죽은 물고기들>

<아! 위대한 사(死)대강> 

20121021,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성명서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지난 17일께 부여 왕진교 일대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물고기 사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늘어나 20일 현재 백제보 상류 왕진교에서 부여 석성면까지 약 20km구간에 걸쳐 누치, 참마자, 동자개, 끄리 등 물고기 수 만 마리가 폐사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4대강사업 시작 이후 끊임없이 계속된 환경오염과 피해는 결국 금강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계속되는 환경오염과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인 대형보의 수문을 열고 금강을 흐르게 해야 한다.’

금강을 지키는 사람들의 양흥모 상황실장은 21한겨레기자에게 부여군이나 금강유역환경청에서 물고기 사체 수거를 계속하고 있지만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여전히 물고기 사체가 강 주변에 즐비하고 악취가 심하게 나는 등 처참한 상황이며 10cm 정도의 치어부터 40~50cm 정도 되는 큰 물고기들까지 다 떠올라 금강에 있는 모든 물고기가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구름을 옷으로 두르고 있는 운봉 가는 길에 듣는 기막힌 소식이다.

만장 운봉의 신령님! 당신이 흘려보낸 강물을 저렇게 만든 인간을 용서해야 할까요?”

안 돼. 물을 막아 사람이 죽었다면 용서하마. 하지만 물고기들을 죽이는 건 용서 못한다. 사람이야 죽으면 다시 태어날 사람이 있지만, 물고기들이 모두 죽으면 모든 생명이 다 죽느니라. 그래서 물길을 막은 자들만큼은 용서 할 수가 없다. 그 벼락 맞혀 죽일 자가 누구냐?”

아시면서 그러세요?”

아무튼 누구냐? 대표로 한 놈만 대라.”

쥐라고 다 아시면서요. 저는 그 인간을 인간이라 하지 않고 쥐라하지요.”

내가 예전에 이곳 탐관오리였던 운봉 영장도 혼을 낸 적이 있다. 춘향전 읽어봤느냐?”

 

<민족의 고전 춘향전>

맞다. 춘향전의 한 대목에 운봉 영장(營將)이 나온다.

근읍(近邑)의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 영장,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들어온다.’

모두 다 남원의 변사또가 초대한 가까운 지역의 수령들로 탐관오리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변 사또의 직속 부하인 운봉 영장은 도둑놈 잡는 인간인지라 눈치 하나는 빨랐다.

 

사연인즉 이렇다. 변학도, 그러니까 남원 사또의 생일 잔칫날 거지 차림의 암행어사 이몽룡이 어거지로 한 상 달라하고는 술상을 엎질렀다. 이에 좌중의 의견이 분분하자, 이몽룡이 시나 한 수 짓고 가겠다고 능청을 떨었다.

나도 부모덕에 글자를 배웠소. 이런 잔치에 얻어먹고 그냥 가면 무엄하니 글귀나 짓고 가겠소. 운을 부르시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솜씨를 보자. ()자는 기름 고() 높을 고()’

어떤 현감 하나가 거드름 피우며 아량을 베풀 듯 말하고 운자를 불렀다.

이에 이몽룡은 거침없이 시 한수를 지었다.

 

<과메기 먹는 ㅋ ㅋ > 

금 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민중의 피요.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일혈(千人血)이요

화려한 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

호사한 촛대에서 흐르는 촛물은 민중의 눈물이니. ‘촉루낙시(燭淚落時)에 민루낙(民淚落)하니,’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하는 소리 높구나.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

  

요즈음 쥐닭 무리들의 원조(元祖)로 손바닥 비비기와 눈알 돌리기가 특기이자 취미인 운봉 영장이다. 힐끗, 눈치 빠르게 이몽룡의 시를 훔쳐보니 예사 내용이 아니다. 감히 사또를 원망하고 백성을 위하는 글을 누가 쓴단 말인가? 혹시 암행어사?

운봉 영장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아 날 살려라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암행어사 출두야!”

그 순간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고 도망치는 탐관오리들 모습이 가관이다.

임실 현감은 갓을 옆으로 쓰며 이 갓 구멍을 누가 막았느냐? 혼자 지랄이다. 전주 형관은 말을 거꾸로 탄 채 말 똥구멍에 코를 박고 이 말 목이 있느냐, 없느냐? 발광이다. 또 어떤 인간은 오줌도 부족해 쌩 똥을 싸고, 어떤 인간은 그냥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 자세로 직행이다.

 

<예술가 이 하씨의 29만원 인생> 

운봉 나그네가 만장 운봉의 신령님께 아는 척을 한다.

만장 운봉의 신령님! 이 얘기를 말씀 하시는 거지요?”

, 그렇다니까. 그 때 그 운봉 영장놈도 오줌 재리고 쌩 똥 싸며 이곳으로 도망을 쳐 왔지 않겠느냐?”

그래서요?”

그래도 여기 와서는 좀 정신이 났던지, 킁킁 제 옷에서 나는 똥오줌 냄새를 맡더구나.”

백성의 기름을 짜서 민중의 눈물로 요리하고, 민중의 피를 곁들여 마셨으니 그 냄새가 오죽이나 지독했겠어요?”

그렇지. 그래 그 인간이 현청으로 들어오자, 그 냄새에 그만 나도 기절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요?”

, 그런데 나졸들이 모두 소문 듣고 도망쳐버렸으니, 사람이 있어야지. 이 인간 저 아래 냇물로 나가 옷을 벗고 몸을 대층 씻긴 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그 똥 묻은 옷이 없는 거라. 크크크!”

어쩌다가요.”

꼭 말해야 아느냐? 내가 똥개 한 마리를 시켰지. 그 똥개가 그 인간 옷을 물어가 버린 거야.”

볼만했겠는데요.”

그렇지. 그 다음 날까지 냇가 풀숲에 숨어 있다가, 어사또가 보낸 관졸들에게 잡혔지. 디룩디룩 살찐 돼지, 그 발가벗은 몸으로 말야.”

아이고, 신령님! 잘 하셨습니다. 그 이상은 상상만 하겠습니다. 크크크!”

 

<운봉 신령니임! 이 놈들도 어찌 좀 해주세요. 녜!> 

그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구름 봉우리 운봉 땅이다.

운봉은 남원시(南原市)에서 20거리로 동쪽은 산내면(山內面), 남쪽은 주천면(朱川面), 북쪽은 산동면(山東面) 서쪽은 이백면을 경계로 남원시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운봉 고을은 지리산 서북쪽의 해발 450650m의 고원분지로 세걸산에서 발원한 람천(覽川)은 이곳을 적셔주는 젖줄이다. 이 람천은 운봉을 떠나 많은 하천이 들어오면서 임천이 되고 경호강이 되었다가 남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산이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이 산을 오르지 못한다지만, 운봉의 람천은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니 산을 넘는 신령스런 냇물이다. 동서화합의 고마운 물길이다.

 

 <운봉 투구와 갑옷>

<천계호>

이 운봉고원은 철의 왕국이다.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마한의 한 왕이 진한과의 전쟁을 피해 달궁계곡으로 피난을 와 70여년을 다스렸다. 지금도 남아있는 100여기의 말무덤과 가야계 고총이 당시의 위세를 알게 한다. 그 왕국은 운봉가야로 발전 150여년을 더 이어갔다. 다 철의 힘이었다.

달궁계곡 야철지, 고기리 야철지, 세걸산 서쪽 금새암골의 수철리 야철지, 바래봉 서쪽 골짜기의 산덕리 야철지 등이 바로 이곳 운봉 고을이 철의 생산과 제련을 한 고대 철의 왕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당시의 수준 높은 철의 생산과 주조기술의 결과물이다.

1500년 전 백제 왕이 보낸 중국제 찻잔인 청자천계호(靑磁天鷄壺)와 쇠로 만든 운봉 투구와 갑옷, 자루솥도 이곳 가야계 고총에서 출토됐다. 특히 천계호(天鷄壺)는 둥근 몸체에 닭 머리 모양의 주둥이와 활을 닮은 손잡이가 달린 고대의 자기(磁器). 중국의 삼국시대 말부터 남북조시대까지 제작되었던 차를 담는 용기로 주인의 무덤에 함께 묻히는 명기(明器). 이런 수준 높은 유물로 당시 운봉 지역의 위상에 대해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활을 쏘고, 북을 치는 풍류를 모르면 남원사람이 아니라 했다 한다. 남원은 국악의 본거지다.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며 수많은 명인과 명창들이 나왔다.

특히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며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 받은 송흥록(1859년 철종 10)이 태어난 곳이다. 송흥록은 귀곡성(鬼哭聲)에 능했다 한다. ‘춘향가중 옥중 장면의 귀곡성을 할 때면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고 음산한 귀신소리가 들렸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진주의 촉석루에서 옥중비가를 불렀을 때다. 그의 슬픈 소리에 청중은 모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다 귀곡성을 내는 창거창래(唱去唱來)의 진경에 들어가자 갑자기 바람이 일고 수십 개의 촛불이 일시에 꺼지면서 하늘로부터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무서움과 두려움에 등골이 오싹, 청중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한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운상원도 운봉이다. 남원, 그 중 운봉은 말 그대로 국악의 성지(聖地)’인 것이다.

 

<송홍록 생가> 

이에 걸맞게 송홍록이 태어난 운봉읍 회수리 비전마을에 20071031일 국내 최대의 국악 전문 집단시설인 국악의 성지가 조성됐다. 이곳은 전통국악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판소리, 농악, 기악, 전통무용 등 4대 전통국악의 역사를 집대성한 전시 체험장, 독공장, 사당, 납골묘, 국악한마당 등의 시설이 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실상사, 황산대첩비지, 송흥록 생가 등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달오름마을, 허브마을, 흥부마을 등 다양한 곳을 둘러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