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여행기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기 4

운당 2012. 10. 16. 20:46

4. 앙코르

 

비행기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 근교의 시엔립비행장에 내렸고, 한적했지만 남국의 낯선 풍경에 나그네의 정취는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이 여행 전에 다녀왔던 중국 여행 마지막 날 에어컨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귀국 후 약을 먹었음에도 계속되는 미열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니 콧물이 흐르고 눈이 붉게 충혈이 되었다. 열이 오르는데도 그 더운 나라에서 한기가 들었다.

견딜만한 미열로 신체의 기는 떨어졌지만 신들의 도시, 신들의 정원이라는 앙코르를 보러간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등의 유적지 입구의 매표소에서 직접 즉석사진을 찍어 만든 출입권을 한 장 받아들었다. 줄을 지어 안으로 들어가니 자전거에 리어커를 붙인 탈것들이 택시처럼 주욱 늘어서 있었다. 가이드가 미리 예약해둔 그 유적툭툭이라는 것에 2사람씩 올라탔다. 60년대 대다수의 한국인들처럼 깡마른 체구의 젊은 캄보디아 남자가 이제 먹을 거 걱정 없어 몸무게가 자기보다 더 나가는 한국인들을 태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일 먼저 들려볼 앙코르와트를 향해 툭툭이 페달을 밟는다.

 

<유적 툭툭이>

미리 공부해둔 앙코르와트에 대해 간단히 기술해보겠다.

앙코르와트(크메르어: អង្គរវត្ត, 영어: Angkor Wat, Angkor Vat)12세기 초 수르야바르만 2세 황제에 의해 크메르 제국의 도성으로 약 30년에 걸쳐 축조되었다. 앙코르 유적 중 이 앙코르와트 유적은 종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은 사원이었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도 쓰였다. 앙코르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로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 가장 잘 표현된 유적이며 또한 캄보디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앙코르 와트>

이 사원은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사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이 3.6km의 직사각형 해자에 둘러싸여 있는 이 사원은 중앙의 높은 탑이 우주 중심인 메루(Meru), 즉 수미산을 상징한다. 또 주위에 있는 4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한다. 외벽은 세상 끝에 둘러쳐진 산을 의미하며 해자는 바다를 의미한다. 이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가(Naga)난간을 따라 250m의 사암다리를 건너야 한다.

 

<앙코르 와트>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 '나가라'에서 파생된 도읍이라는 의미의 '노코르(Nokor)'의 방언이고,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니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이 된다. '사원의 도읍'이라는 의미인 앙코르와트라는 이름은 16세기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이곳을 최초로 방문한 서양인은 포르투갈 수도사인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라고 한다. 그는 1586년에 이곳을 방문한 뒤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펜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웅장하고 뛰어난 건축물이라고 극찬을 남겼다. 그리고 이 사원군들이 서양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60년 프랑스인 식물학자 앙리 무오의 여행기가 출판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수가 팜트리 야자나무. 킬링필드 때 아이들을 죽인 나무> 

마침내 앙코르와트 사원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아침 햇살이 정면이어서 사원을 바라보는 눈이 더 부셨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다리를 건너 사원 경내로 들어갔다.

먼저 도서관 건물을 둘러봤다. 그리고 가시처럼 사나운 수가 팜트리라는 야자나무 밑으로 갔다.

이 수가 팜트리는 야자나무의 일종인데 킬링필드 당시 이 나무의 잎사귀가 칼 대신 쓰였지요.”

야자나무 잎사귀가 어찌 보면 길쭉한 청룡도처럼 생기긴 했지만, 사람의 목을 자르는 도구로 쓰였다니 끔찍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그냥 저 나무를 향해 던져버렸지요. 칼날 같은 나무의 가시에 찔려 죽어가는 아이의 그 끔찍한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할 수 있는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악몽 같은 그 광경을 차마 생각하기 싫어서인지 더 이상 말문을 닫았다.

신들의 사원, 사원의 도읍에 있는 저 수가 팜트리 야자나무야 무슨 잘못이 있으랴? 하지만 진정 신이 있다면, 자신의 정원에 무심히 서 있는 수가 팜트리 나무를 보면서 더 이상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그런 끔찍한 범죄가 있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하고 맘속으로 기원했다.

 

<도서관 유적. 문명국의 상징>

악몽을 떨치듯 사원 위로 떠 오른 햇살이 환하게 빛을 뿌렸다.

오랜 세월 방치된 모습으로 밀림 속 사원은 나무와 유적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었다. 이들 키가 큰 나무 이름은 스펑나무(비단목화나무)인데 속이 비어있다고 했다. 이 나무들이 앙코르의 밀림 속에 방치된 유적들을 감싸고 거미줄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앙코르와트는 유적지를 둘러싼 해자가 그나마 밀림의 침입을 막아준 때문에 훼손이 적다고 했다. 전쟁을 막는 시설인 해자가 전쟁은 막지 못했지만 밀림의 침입은 막아서 그 피해가 최소화 된 셈이다.

 

 <압사라>

  <압사라>

동글 뾰족해 보이는 첨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앙코르와트의 압사라(천녀)’ 등 벽면의 오묘기묘한 돋음조각을 감상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위험했다. 그렇게 만든 데는 깊은 뜻이 있겠지만, 기다시피 힘들게 올라간 덕분인지, 돌아보는 곳곳이 신비스럽고 위대하다는 생각에 빠지게 했다.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이 사원 건축에 동원되고 피땀을 흘렸는지 눈에 그려본다. 그리고 마침내 위대한 건축물로 그들의 사상과 문명을 총화 시킨 크메르인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드렸다. 설령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었다하더라도 돌을 떡 주무르듯 만들어낸 그들의 솜씨는 장인의 기술을 넘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대단한 크메르인들의 힘과 노력, 이제 그들의 후손들에게 그 영광 영원히 찬란히 빛날 것이라 믿으며 사원의 모습이 그림자로 비치는 연못에서 작별 사진을 찍었다.

 

 <앙코르 와트>

 <사원 안의 부처님>

 <사원 벽의 돋음 조각>

<연못에 잠긴 앙코르 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