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금안동 쌍계정 한글 푸조나무

운당 2022. 11. 15. 09:13

노안의 금안동은 정읍의 태인, 영암의 구림과 함께 호남의 3대 명촌마을이다. 금안(金鞍)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의 한림학사를 지낸 정가신이 쿠빌라이에게 금안장과 백마를 받은 데서 유래한다. 또 금안(禽安)새들의 낙원이란 뜻도 있다.

정가신은 신숙주 어머니의 고조부이다. 여기 외가마을에서 태어난 신숙주(1417~1475)는 설총의 이두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여진어, 인도어, 위그르어, 아리비아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학자이자, 한글창제의 주역이다. 여기 두 내를 거느린 쌍계정은 신숙주가 어린 시절 공부한 곳이고 편액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

이곳 금안동을 기말리, 또는 오룡동이라고도 하는데 오룡동은 신숙주의 5형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신숙주의 부친 신장(1382~1433)은 술을 좋아해 아들 이름을 술주()자와 음이 같은 주()자인 맹주(孟舟), 중주(仲舟), 송주(松舟), 말주(末舟)로 지었다는 뒷말을 들었다. 친구인 허조가 어진 사람을 오직 술이 헤쳤다고 안타까워하고 그의 능력을 아낀 세종이 절주를 당부했건만, 결국 숙주 아버지의 사인은 과음이었다. 16세 때 아버지를 여읜 신숙주는 신혼 생활을 하며 막내인 말주를 부모 대신 키웠다.

신숙주는 세종대왕에게 발탁된 집현전 8학사로 훈민정음의 창제와 발전, 보급에 기여했다. ‘동국정운’, ‘사성통고등 운서 편찬을 주도했고 국가의 기본질서인 국조오례의를 교정, 간행했다. ‘세조실록’, ‘예종실록’, ‘동국통감’, ‘국조보감’, ‘영모록등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1452(문종 2) 수양대군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갈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면서 그와 깊은 유대를 맺어 세조의 즉위과정에 참여했고, 영의정으로 조선 초기 왕조의 기둥 역할을 했다.

그런데 훗날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성삼문은 절의의 상징, 세조와 함께한 신숙주는 변절자의 꼬리표를 달게 됐다. 잘 쉬는 녹두나물을 신숙주에 빗대 숙주나물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웃기는 소리일 뿐이다.

그러니까 신숙주 사후 2백여 년 뒤다. 정묘·병자호란을 겪고 명나라에 절의를 지키자며 성상문은 의리의 상징, 신숙주는 그 반대로 만든 것이다. 영웅과 악당의 짜여진 각본이었다.

또 친일파 문인 이광수도 한 몫 했다. 흥미본위로 고증도 없이 쓴 소설 단종애사가 그것이다. 그가 눈물 나게 묘사한 사육신이 처형되는 날, 죽지 않고 퇴근하는 남편을 보고 신숙주 부인이 목을 매 죽었다는 것은 허무맹랑하다. 이미 5개월 전에 죽은 신숙주 부인이 또 어찌 살아나서 다시 죽는단 말인가? 그렇게 이광수를 비롯하여 서정주, 모윤숙 등은 교묘, 교활하게 글로 민족을 현혹하고 민족정기를 더럽혔다.

이제 신숙주의 명예는 복권되고 복원되어야 한다. 성삼문이 훌륭했으면 신숙주도 똑 같이 훌륭한 것이다. 다같이 조선과 백성을 위해 초개와 같이 자신을 바치고 헌신한 선열이기 때문이다, 곡학아세자가 위정자의 입맛에 따라 역사를 바꾸거나 바꾸려해서는 안 된다.

금안동의 신숙주 생가 터를 둘러보고 그가 형제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놀았던 쌍계정으로 간다. 쌍계정 앞 뒤를 지키고 있는 두어아름 푸조나무를 우러러본다.

한줄기 바람이 우수수’,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간다. 그 바람 소리가 영특하고 사리에 밝아 부모와 이웃은 물론 보는 이들의 칭송을 받았을 어린 신숙주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로 들린다.

나주 금안동 쌍계정 한글 푸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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